상속·증여 설계는 ‘세금 절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분쟁 예방, 생전의 의사 반영, 취약 구성원 보호, 유동성 확보까지 포괄하는 지배구조 설계입니다. 2025년 9월 현재, 고령화·가족구조 변화와 함께 금융자산 비중이 확대되는 흐름 속에서 한국 가계는 유언장, 가족신탁, 사전증여를 결합한 체계적 플랜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본 글은 40대 이상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상속·증여의 실무 프레임을 제시합니다.
유언장: 분쟁 예방과 의사 존중을 위한 최소 장치
유언장은 상속인의 최종 의사를 명확히 하고 가족 간 분쟁을 예방하는 법적 설계도입니다. 효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민법」이 정한 자필증서·공정증서·비밀증서 등 형식별 요건을 충족하고, 보관·검인 절차를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특히 디지털 자산의 증가로 유언장의 중요성이 과거보다 훨씬 커졌습니다. 실무적으로는 다음 다섯 가지가 핵심입니다. 첫째, 자산목록의 완전성입니다. 예금·증권·연금·보험·부동산·디지털자산까지 ‘식별 가능한 정보’(계좌번호·수탁사·지분비율)를 명시해 누락과 분실을 방지해야 합니다. 특히 해외금융계좌나 가상자산 지갑 주소도 포함해두면 상속인이 추후 법적 분쟁 없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둘째, 수익자 지정의 명확성입니다. 특정 자산을 누구에게, 어떤 조건으로 이전할지(예: 거주권 보장, 매각 후 분배, 유지관리 조건) 구체화하여 ‘조건부 상속’의 법적 논란을 줄입니다. 셋째, 유류분 쟁점 고려입니다. 법정상속분·유류분 제도를 감안해 생전증여분과 유언 분배가 충돌하지 않도록 비율·근거를 남기면 분쟁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넷째, 집행자 지정입니다. 전문성과 중립성을 갖춘 집행자를 선정해 절차 지연을 줄이고, 회계·세무 전문가를 함께 지정해 세무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다섯째, 정기 업데이트입니다. 결혼·출산·이혼·자산 변동 등 주요 라이프 이벤트마다 유언장을 갱신하여 현실과 괴리가 없도록 합니다. 유언장은 상속세 절감의 도구가 아니라 가족 간 신뢰를 지키는 ‘법적 설계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족신탁: 취약 구성원 보호와 자산관리의 전문화
가족신탁은 위탁자가 수탁자(신탁회사·개인)에게 자산 관리를 맡기고, 수익자에게 분배 기준을 지정하는 구조입니다. 활용 목적은 노령화에 따른 의사결정능력 저하 대비, 미성년·장애인·무경험 상속인의 재산 보호, 장기 분할지급(생활비·의료비·교육비) 등입니다. 실무적으로는 ①신탁 목적(보호·절세·분할), ②대상자산(예금·증권·부동산·보험·디지털자산), ③분배규칙(금액·주기·조건), ④종료사유와 잔여재산 귀속, ⑤수탁자 권한·책임 등을 명문화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장애가 있는 자녀를 위해 매월 생활비·의료비를 일정 한도 내에서 지급하고, 남은 자산은 차후 특정 기관에 기부하도록 설정할 수 있습니다. 가족신탁은 상속세 자체를 없애지는 않지만, 상속 시점의 유동성 부족(부동산 편중)과 관리 역량 부족을 완화합니다. 또한 신탁을 통해 ‘조건부 분배’(예: 의료비·교육비 사용 제한, 도박·채무 제한, 일정 나이 도달 전까지 인출 제한)를 설계할 수 있어 가족의 가치관을 제도화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비용(수수료·설정비)과 정보 공개 범위를 사전에 합의하고, 신탁계약과 유언장을 연동해 중복·충돌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고액자산가의 경우 해외신탁·복수신탁(Revocable/Irrevocable Trust)과 국내신탁을 결합해 관리·세무·승계 목적을 맞춤형으로 설계할 수 있습니다.
절세·유동성 계획: 사전증여·보험·현금흐름의 삼각편대
상속세·증여세 최적화는 ‘시기·한도·구조’가 핵심입니다. 첫째, 사전증여입니다. 공제 한도와 누진세율을 고려해 여러 해에 나누어 증여하면 평균세율을 낮출 수 있습니다. 단, 성년·미성년, 직계·비직계별 공제 규정과 사후관리(자금출처·사용내역)를 준비해야 하며, 증여 후 10년 내 상속 시 합산과세 규정도 고려해야 합니다. 둘째, 보험의 역할입니다. 상속 시점의 유동성(현금) 부족은 대표적 리스크이므로, 사망보험금을 상속세 재원으로 활용하는 구조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다만 수익자 지정, 과세여부, 보험금 귀속과 분배 기준을 명확히 해야 분쟁과 과세 위험을 줄입니다. 특히 법인과 개인이 혼재된 보험계약의 경우 과세관계가 복잡해지므로 세무전문가의 검토가 필요합니다. 셋째, 현금흐름 관리입니다. 상속세는 신고·납부 타이밍이 정해져 있으므로, 양도·처분이 어려운 자산 비중이 높다면 분납·연부연납·담보 제공 등 현금화 계획을 사전에 세워야 합니다. 부동산이 전체 자산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 생전 일부 매각이나 유동화·리츠 편입 등도 검토할 수 있습니다. 넷째, 해외자산·디지털자산 점검입니다. 해외금융계좌신고·상속세 평가·이전 리스크를 사전에 점검해 미신고·과소평가로 인한 가산세 위험을 방지합니다. 다섯째, 가족회의 정례화입니다. 배분 원칙·철학·우선순위를 공유하면 세무 최적화 이상의 분쟁 예방 가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연 1회 ‘가족자산운영회의’를 열어 현황·배분·신탁계약 변경사항을 점검하면 좋습니다.
상속·증여 설계는 ‘유언장+가족신탁+사전증여+유동성’의 결합일 때 가장 강력합니다. 이는 단순히 세금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가족 간 신뢰와 질서를 확보하는 제도적 장치입니다. 따라서 지금 자산목록을 정리하고, 유언장 초안과 가족신탁 옵션, 사전증여 타임라인을 표로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준비가 분쟁을 막고, 유동성이 급전을 대비하며, 체계적인 설계가 세금을 이깁니다. 또한 세무·법무·신탁 전문가와 협업하여 맞춤형 플랜을 수립하면 절세뿐 아니라 가업승계·가족기업 거버넌스 개선까지 연계할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가족헌장’(Family Constitution)과 연계해 상속·증여·경영권 승계를 종합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